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닉슨 (문단 편집) === 이후 === 1978년 1월 [[지미 카터]] 대통령은 닉슨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였다. 그 자리에서 닉슨은 함께 초대된 [[제럴드 포드]]와 [[넬슨 록펠러]], 존슨 대통령의 부인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 직후 닉슨은 회고록을 출판했는데, 반성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다는 비난과 더불어 대중적 호기심의 결합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그 뒤로도 16년 동안 8권의 정치분석서를 썼고 평론가와 일반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란 평가를 받았다. [[파일:external/static2.stuff.co.nz/4837234.jpg|width=300]] 1994년 1월 사망 3달전 모습 그 후 소련의 해체 당시 미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고, 1994년 3월 81세의 나이로 다시 한번 모스크바를 밟았다.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웬일로 [[빌 클린턴]]이 [[조지 H. W. 부시]]는 물론 [[로스 페로]]에게도 패배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주장하다가 보기좋게 빗나가는 꼴을 보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닉슨은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도중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그 클린턴이 재임하던 [[1994년]]에 닉슨은 딸들이 지켜보는 병원의 침대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도와줘(Help)"였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은 닉슨의 죽음을 애도하며 국장을 지시했고, 그의 시신은 고향 캘리포니아 주로 옮겨져서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 곁에 안장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